2012년 개봉한 정병길 감독의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는 대한민국 영화계에 파격적인 소재와 치밀한 전개로 큰 화제를 모은 범죄 스릴러 작품이다. 영화는 15년이라는 법적 공소시효가 만료된 후 스스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범죄 사실을 고백한 연쇄살인범과 그를 눈앞에 두고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는 형사의 숨 막히는 대결을 밀도 있게 그려냈다.
공소시효 만료와 살인범의 고백, 파격적 소재로 포문 열다
배우 정재영과 박시후, 최원영 등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이 대거 참여해 극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으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라는 제한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스토리라인과 강한 액션 시퀀스를 앞세워 관객들의 호평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영화의 주요 서사는 1986~1990년 발생해 전 국민을 공포와 충격에 몰아넣었던 ‘연곡 연쇄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당시 사건으로 총 10명의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했으며 특히 마지막 피해자였던 여성 정수연은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아 유족들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겼다.
사회적 파장이 컸던 끔찍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는 난항을 겪었고 결국 15년의 공소시효가 종료되는 2005년까지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채 미제로 남고 만다. 당시 사건의 담당 형사였던 최형구(정재영 분)는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여기에 더해 과거 범인과의 치열한 난투극 도중 자신의 얼굴에 끔찍한 흉터를 남기고 사라진 범인을 향한 분노로 공소시효가 끝난 후에도 단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게 된다.
미결로 남은 ‘연곡 연쇄살인 사건’, 형사의 지워지지 않는 흉터
작품의 주요 배경은 자서전이 출판되는 2007년이지만 영화의 첫 장면은 연곡 연쇄살인 사건의 공소시효가 최종적으로 종료되는 2005년의 어느 비 오는 밤으로부터 시작된다. 담당 형사 최형구는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는 소식을 접한 뒤 과거 범인을 필사적으로 쫓던 순간을 떠올린다. 당시 형구는 연쇄살인범을 어느 술집까지 몰아붙이는 데 성공했으나 궁지에 몰린 범인은 술집 주인을 인질로 잡고 목에 상처를 입힌 뒤 달아났다. 형구는 쏟아지는 빗속에서 끝까지 추격을 계속했으나 오히려 범인의 기습을 받아 큰 부상을 입게 됐고 범인은 형구의 입가를 찢어 잔혹한 흔적을 남긴 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공소시효가 끝난 바로 그날 밤 형구는 또 한 번의 깊은 비극을 마주하게 된다. 과거 피해자의 동생이었던 정현식이 형구의 눈앞에서 극단적인 사고를 당해 숨을 거두면서 사건을 끝내 해결하지 못했다는 최형구의 죄책감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다. 그렇게 사건이 묻히는 듯했으나 2년이 지난 2007년 대한민국을 통째로 뒤흔드는 인물이 대중 앞에 등장한다. 자신을 과거 연곡 연쇄살인 사건의 진짜 범인이라고 밝힌 이두석(박시후 분)이 자신의 살인 행각을 상세히 기록한 자서전 ‘내가 살인범이다’를 출간한 것이다.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으로는 그 어떤 처벌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두석은 수려한 외모와 능숙한 언변을 무기로 순식간에 미디어와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스타덤에 오른다.
이두석은 과거 자신이 살해한 피해자의 유족들을 직접 찾아가 언론 앞에서 공개 사죄를 감행하는가 하면 담당 형사였던 최형구를 찾아가 도발적인 태도를 취하는 등 철저히 여론의 중심에 서서 상황을 주도한다. 이에 분노한 피해자 유족들은 법을 대신해 직접 복수를 결심하고 이두석을 납치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지만 최형구의 집요한 추적으로 이두석은 다시 구출된다. 이후 사건을 향한 대중의 관심이 최고조에 달하자 최형구와 이두석은 지상파 생방송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열한 설전을 벌인다.
바로 그 순간 자신을 ‘J’(최원영 분)라고 밝힌 의문의 인물이 방송국에 전화 통화를 시도하며 극은 급반전을 맞이한다. 수수께끼의 인물 J는 현재 대중을 기만하고 있는 이두석은 가짜일 뿐이며 자신이 진짜 연곡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임을 암시하는 결정적인 단서들을 내놓는다. 이에 사건은 다시 한번 예측 불가능한 국면으로 뒤집히고 진실을 밝히려는 형사 최형구와 베일에 싸인 진짜 범인임을 주장하는 J, 의도를 알 수 없는 이두석 세 사람이 같은 무대에 오르며 오랫동안 감춰졌던 추악한 진실을 향한 마지막 대결이 시작된다.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는 법이 용서해 버린 연쇄살인범이라는 파격적이고도 도발적인 소재를 통해 “공소시효는 끝났지만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사회에 던진다. 현실적인 법적 한계와 사회적 모순 속에서 끝까지 정의를 실현하고자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인간 군상을 그린 작품은 영리한 반전과 멈추지 않는 전개로 마지막 순간까지 관객들을 거세게 몰아치며 한국형 웰메이드 범죄 스릴러의 진면목을 명확히 증명해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