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상반기 극장가가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해 1~ 6월까지의 누적 관객 수는 약 4249만 명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00만 명 이상 줄어든 수치다. 심지어 코로나19 직후인 2022년 상반기 관객 수(4494만 명)보다도 낮다. 팬데믹 이후 회복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무색해졌다.
올해 300만 명 넘긴 단 3편의 영화
개봉 영화 수가 줄면서 극장을 찾을 동력 자체가 약화된 상황이다. 제작 편수 감소, 이른바 ‘창고 영화’ 소진, 기대작 부재가 이어지며 박스오피스 자체가 얼어붙었다. 관객의 발걸음도 함께 줄었다. 상업영화 기준으로 100만 명을 넘긴 작품조차 드물다. 과거엔 개봉 첫 주에 무난히 돌파하던 수치가 이제는 넘기기 힘든 벽이 됐다.

실제로 올해 300만 관객을 넘긴 영화는 단 세 편에 불과하다. 유해진, 강하늘, 박해준 주연의 ‘야당’이 337만 명으로 흥행 1위를 차지했고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이 335만 명,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이 301만 명을 기록했다. 세 편 모두 400만 관객을 넘기지 못했다.
한국 영화로 범위를 좁히면 사정은 더 열악하다. ‘야당’ 외에는 ‘히트맨2’(254만), ‘하얼빈’(215만), ‘승부’(214만), ‘하이파이브’(184만), ‘검은 수녀들’(167만) 정도가 100만 명을 넘겼다. 대부분의 작품은 100만 명조차 넘지 못하고 사라졌다. ‘거룩한 밤: 데몬헌터스’로 복귀한 마동석도 77만 명이라는 성적에 그쳤다.
올해는 흥행 대박도, 안정적인 중간 규모 성과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시장 내 균형이 무너졌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일반적으로는 대박 영화보다 일정 수준 이상의 관객을 모으는 ‘중박’ 영화가 여러 편 존재할 때 시장이 안정된다고 평가하는데 지금은 이 범주에 해당하는 작품조차 찾기 어렵다.
관객 감소의 원인으로는 여러 요인이 지목된다. OTT 플랫폼이 급성장하며 관객의 소비 방식 자체가 바뀌었다. 한때는 쇼핑 중 들러 영화 한 편 보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이제는 철저한 선택의 시대다. 높은 티켓 가격에 부담을 느낀 관객은 영화 한 편을 고르기까지 더 까다로워졌다.
특히 ‘홀드백’ 문제도 극장 입장에선 악재다. 극장 개봉 후 플랫폼 공개까지 걸리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몇 달을 기다려야 볼 수 있었던 작품이 이제는 한 달 남짓 지나면 OTT에 뜬다. 극장에서 보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퍼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1월 개봉한 ‘검은 수녀들’은 개봉 40일 만에 쿠팡플레이에서 유료 회원 대상 무료 공개됐다. 3월 개봉한 ‘승부’ 역시 비슷한 시점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이런 흐름은 관객에게 편의성을 제공하지만 극장 입장에서는 관람을 미루는 원인이 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은 콘텐츠 자체의 매력 약화다. 팬데믹 이후 촬영이 지연되고 기획이 중단되면서 개봉 대기작이 줄었다. 관객을 끌어들일 만한 신작이 줄어들면서 전체 시장이 위축됐다. 투자 회수가 어려워지자 자본 역시 조심스러워졌고 결과적으로 내년 상반기에도 흥행작 부족 현상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반기 반등 가능할까… 여름 시장에 거는 기대
극장가는 하반기 라인업에 희망을 걸고 있다. 여름 시장을 겨냥해 주요 배급사들이 전략 작품을 선보인다. 이민호, 안효섭 주연의 ‘전지적 독자 시점’(롯데엔터테인먼트), 조정석 주연의 ‘좀비딸’(NEW), 윤아와 안보현이 출연하는 ‘악마가 이사왔다’(CJ엔터테인먼트) 등이 여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외에도 설경구, 변요한 주연의 ‘소년들’, 박정민이 주연을 맡은 ‘하루살이’, 손예진 복귀작 ‘크로스’ 등 상반기에 밀린 작품들이 줄지어 하반기 상영을 대기 중이다. 일부는 이미 해외 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돼 평가를 받은 상태다.
정부도 영화계 지원에 나섰다. 올해 추가경정예산에 영화 할인 쿠폰 사업이 포함됐다. 국민 1인당 최대 4회, 회당 6000원을 할인받을 수 있으며, 전국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에서 사용 가능하다. 할인 쿠폰은 다음 달부터 배포될 예정이다.
이 같은 시도들이 하반기 관객 수 증가로 이어질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일정 수준의 흥행작이 등장하고 쿠폰 정책이 수요를 자극한다면 극장가 분위기가 반전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OTT와 공존 시대… 극장만의 무기 필요
OTT와 경쟁 구도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웨이브, 티빙 등 국내외 플랫폼은 영화뿐 아니라 오리지널 콘텐츠에 집중하며 이용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제는 집에서도 대작을 고화질로 즐길 수 있는 시대다.

극장만이 제공할 수 있는 ‘경험’이 강조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4DX, IMAX, 돌비시네마 등 관람 특화 포맷은 여전히 극장을 찾게 만드는 유인이다. 그러나 이런 기술적 차별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콘텐츠 자체가 관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극장을 위한 마케팅 전략도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티저 예고편, 출연진 인터뷰에 그치지 않고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스토리 중심 홍보가 필요하다. SNS 기반 바이럴 전략, 팬 커뮤니티 대상 사전 시사회 등 관객 참여형 이벤트도 중요해졌다.
극장가의 위기는 단기간 회복되기 어렵지만 콘텐츠 투자 회복, 배급 전략 재정비, 관람 경험의 재설계 등 여러 노력이 동시에 이뤄진다면 다시 관객이 돌아올 가능성도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