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커엔터테인먼트영화낯선 소재인데… 실화 기반으로 제작돼 200만 관객을 넘긴 '한국 영화'

낯선 소재인데… 실화 기반으로 제작돼 200만 관객을 넘긴 ‘한국 영화’

‘승부’ 대국을 하고 있는 조훈현. /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천재와 천재가 마주한 순간, 바둑판 위 세대교체가 시작됐다. 영화 ‘승부’는 1990년대 초, 한국 바둑의 전설 조훈현과 그의 제자 이창호의 사제 대결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한때 세계를 제패한 영웅이 자신이 키운 신예에게 패배하면서 맞닥뜨리는 충격과 혼란, 그리고 다시 일어서려는 과정을 그린다.

지난 3월 개봉한 이 영화는 200만 관객을 넘기며, 한국 스포츠 영화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바둑이라는 다소 낯선 소재를 택했지만, 단순한 승패보다 인물 간의 관계와 내면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관객의 몰입을 이끌었다. 수십 년을 함께한 두 사람의 거리, 무너지는 자존심과 치고 올라오는 패기, 그리고 그 안에서 생겨나는 균열과 책임. ‘승부’는 바둑을 빌려 사람을 말하는 영화다.

세계를 제패한 조훈현, 새로운 천재를 만나다

‘승부’ 세계 정상에 오른 조훈현. /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198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회 응창기배 세계 프로바둑 선수권대회 결승 최종국. 조훈현(이병헌)은 한국 바둑 최초로 세계 무대 정상에 오른다. 일본과 중국이 주도하던 바둑계에서 한국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순간이었다. 그에게 쏟아진 것은 환호와 훈장뿐만이 아니었다. 이 승리를 계기로 조훈현은 바둑계를 이끌어갈 인물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도 함께 떠안게 된다.

귀국 후, 그는 전주의 한 대국장에서 기이한 소년을 만난다. 사활 문제를 가볍게 풀고, 대국 중간에 끼어든 뒤 판을 뒤엎어버리는 실력. 이창호(아역 김강훈)는 바둑을 배운지 반년도 안 된 상태였지만, 조훈현은 그 안에서 비범함을 읽어낸다. 곧바로 제자로 들이고, 같은 집에서 먹고 자며 바둑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승부’ 어린 이창호와 마주한 조훈현. /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조훈현은 단순히 기술만 가르치지 않았다. 수읽기, 포석, 실전 감각, 심지어 돌을 두는 손 위치까지 모든 것을 몸으로 익히게 한다. 이창호는 스승의 방식에 따라 빠르게 성장했고, 조훈현 역시 자신이 어떤 인재를 키우고 있는지 점점 실감하게 된다. 문제는 그 인재가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자신을 따라잡고 있었다는 점이다.

누구도 예상 못 한 첫 사제 대결의 결과

‘승부’ 처음으로 이창호에게 패배한 조훈현. / 유튜브 ‘바이포엠스튜디오 BY4M STUDIO’

몇 년이 흐른 뒤, 마침내 이창호(유아인)는 프로 대회 결승에 올라 조훈현과 맞붙게 된다. 모두가 스승의 승리를 예상했다. 대국은 방송으로 생중계됐고, 여론 역시 조훈현의 압도적인 우위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창호가 기세를 타며, 조훈현을 꺾었다. 조훈현은 그날 처음으로 자신이 키운 제자에게 공식적으로 패배한다.

이 대국은 두 사람의 관계에 금을 남긴다. 조훈현은 흔들렸고, 그날 이후 쌓아온 타이틀과 명성이 서서히 무너져갔다. 자리를 넘겨준 상대는 다름 아닌 자신의 제자였다. 이창호는 여전히 스승을 존경했지만, 바둑판 위에서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조훈현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대국을 반복한다. 체력은 떨어지고, 집중력은 흐려진다. 자신이 가르친 기술에 자신이 무너지는 상황. 그제야 그는 정신을 차리고, 마지막 승부를 준비한다.

바둑의 본질은 ‘공격’

‘승부’ 조훈현이 대국을 기다리고 있다. /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조훈현은 “실전은 기세가 8할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 말은 바둑의 기술이나 지식보다 감각과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초반에 이창호는 그 철학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은 수읽기와 계산에 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점 조훈현이 말한 감각의 중요성을 체득해 간다. 초반 포석이 무너지면 중반이 흔들리고, 순간의 방심이 승부 전체를 뒤집는다. 그리고 그것이 바둑의 진짜 무서움이라는 사실도 함께 배운다.

같은 집에서 밥을 먹고도 판 위에서는 살벌하게 맞붙어야 하는 관계. 이창호가 성장할수록 조훈현은 더 버거워지고, 조훈현이 무너질수록 이창호는 죄책감과 책임을 안게 된다.

‘승부’ 스승 조훈현에게 절을 하는 이창호. / 유튜브 ‘바이포엠스튜디오 BY4M STUDIO’

‘승부’는 인물들의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다. 조훈현이 이창호에게 “바둑 흉내만 내고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기술이나 실력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태도에 대한 질책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끝내 멀어지지 않는다. 스승은 제자에게 물러서지 않고, 제자는 스승을 끝까지 존경한다.

마지막에 조훈현은 스승에게 받은 바둑판에 글귀를 새겨, 이창호에게 건넨다. 이 장면은 두 사람이 바둑으로 같은 시대를 함께 걸어온 관계임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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