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커엔터테인먼트영화눈물 난다…제주 4·3 실화 영화 ‘한란’서 역대급 모성애 선보인 여배우

눈물 난다…제주 4·3 실화 영화 ‘한란’서 역대급 모성애 선보인 여배우

영화 ‘한란’ 스틸컷. / 트리플픽쳐스

영화 ‘한란’이 관객들의 심장을 쥐고 흔든다. 제주의 산과 바다, 총성과 화염이 휘감던 1948년, 잊힌 이야기를 들춰낸 이 영화는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지금껏 스쳐 지나간 수많은 고통의 얼굴을 하나하나 다시 꺼내 보여준다. 영화는 11월 26일 개봉했다.

제주4·3 비극 한가운데 선 26살 엄마

‘한란’은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54년 9월 21일까지 이어진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희생당한 제주 주민들의 현실을 담았다. 그 중심엔 딸 해생(김민채)을 잃고 싶지 않았던 26살 어머니 아진(김향기)이 있다.

영화 ‘한란’ 공식 포스터. / 트리플픽쳐스

김향기는 이번 작품에서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해녀였던 아진은 군인들이 몰려온다는 말을 듣고 산으로 피신한다. 마을에 남겨둔 딸과 시어머니가 군인들에 의해 몰살당했다는 소문이 돌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딸이 무당에게 보였다는 말을 듣고는 다시 하산을 결심한다.

아진은 바위를 넘고, 숲을 가르며, 한라산 깊은 어둠을 뚫는다. 모성애로 불릴 수밖에 없는 본능이지만, ‘한란’은 그 감정을 과하게 끌어올리거나,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김향기의 연기가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촬영 3개월 전부터 제주 방언을 연습하며 캐릭터의 감정을 쌓았다. 입에 붙지 않던 제주어를 아예 새 언어처럼 받아들이며 감정과 억양을 완전히 체화했다. 결과적으로 관객은 자막을 보지 않아도 김향기의 말 속 감정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

영화 ‘한란’ 예고편 캡처. / 컬처앤스타 Culture N Star

해생을 연기한 김민채의 존재감도 뚜렷하다. 말은 거의 없지만 눈빛에 담긴 공포, 슬픔, 희망이 교차하며 화면을 가득 채운다. 아이가 혼자 산을 오르는 장면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다. 밥그릇과 콩 몇 알을 싸들고 엄마를 만나러 가는 아이의 모습은 보는 이의 숨을 멎게 만든다.

극은 모녀의 이야기로 출발하지만 곧 제주의 전체 풍경을 보여준다. 마을 사람들이 토벌대에 끌려가고, 산부대와 군경의 갈등은 진영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잔혹한 명령을 수행하는 중사, 민간인을 죽이지 못하는 하사의 시선이 교차하며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씌워졌던 개인들의 얼굴을 복원한다.

영화 ‘한란’ 예고편 캡처. / 컬처앤스타 Culture N Star
영화 ‘한란’ 예고편 캡처. / 컬처앤스타 Culture N Star

이 영화의 중요한 요소는 화면에 담긴 제주다. 제주의 숲, 바다, 동굴이 파괴된 역사를 말없이 증명한다. 감독과 김향기는 촬영 전 4·3 사건 현장을 따라가며 ‘다크 투어’를 진행했다. 서로 닮아있지만 모두 다른 제주 숲의 표정을 확인하고 그 안에 감정을 불어넣었다. 김향기는 이 자연이 오히려 힐링이 됐다고 말했다.

작품에서 인상적인 건 제주어다. 삼춘, 무사, 폭삭 속았수다처럼 일부 단어는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은 낯설다. 그러나 생경함은 곧 익숙함으로 바뀐다. 제주 출신 조연배우들의 도움으로 대사는 완성됐고, 김향기의 입을 통해 그 말들은 생명력을 얻었다. 제주어 자막이 함께 제공되지만, 말보다 감정이 먼저 관객에게 도달한다.

영화 ‘한란’ 스틸컷. / 트리플픽쳐스

하산 중인 아진의 발걸음은 무겁고, 올라오는 해생의 길도 험하다. 두 사람의 여정은 서로를 향해 좁혀지고, 관객의 시선은 둘 사이에 놓인다. 한 명은 과거를 지나오고, 다른 한 명은 미래를 향해 간다. 감정은 억지로 끌어올려지지 않는다. 숨을 멎게 만드는 정적, 울음조차 삼키는 침묵이 더 깊게 파고든다.

숨은 감정까지 끌어올린 김향기의 내공

김향기는 25살의 나이에, 26살의 엄마 역할을 맡았다. 당시 시대상으로 보면 어머니 역할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모성이라는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며 눈빛과 행동을 관찰했다. 인간과 동물의 본능이 만나는 지점에서 감정을 길어올렸고, 그 감정은 정제되지 않은 채로 화면에 실렸다.

영화 ‘한란’ 스틸컷. / 트리플픽쳐스

‘한란’은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까지 외면해왔던 장면들을 조용히 꺼내어 보여준다. 제주의 바람이 불고, 그 안에 휘말렸던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린다.

하명미 감독은 ‘그녀의 취미생활’로 데뷔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2관왕에 오른 바 있다. 이번 ‘한란’에서 감독은 직접 각본도 썼다. 그리고 단 한 명의 배우만을 생각하며 대본을 썼다. 김향기다. 그는 그 기대에 응답했다. 제주 4·3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감정적으로 끌고 가지 않으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남기는 연기는 단연 돋보인다.

영화 ‘한란’ 예고편 캡처. / 컬처앤스타 Culture N Star

관객은 이번 영화에서 단순한 정보보다 체험에 가까운 감각을 얻게 된다. 역사 교과서에 한 줄로 지나가는 4·3의 장면을, 화면으로 눈앞에서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기막헌 일을, 니영 나영 잊어불며는 누게가 알아주까?’라는 대사가 스친다. 영화는 그 질문을 던지고 끝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지금 우리는 이 일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러닝타임은 118분이며, 12세 이상 관람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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