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스페셜 2020 ‘나의 가해자에’ 다시보기
과거 학교폭력 피해자였던 기간제 교사가 자신을 괴롭혔던 가해자를 동료 교사로 만나는 파격적인 설정의 드라마가 최근 유튜브를 통해 재공개되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KBS 드라마스페셜 ‘나의 가해자에게’는 지난 2020년 11월 KBS 2TV 드라마스페셜에서 방송됐던 작품으로,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나수지 PD가 연출하고 강한 작가가 극본을 맡은 이 작품은 무진여고 4년차 기간제 교사 송진우가 과거 자신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퍼부었던 유성필을 새로 부임한 기간제 교사로 맞닥뜨리며 시작된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학교’를 만들고자 했던 진우의 꿈은 성필의 등장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운명의 장난처럼 뒤바뀐 입장에서 재회한 두 사람, 그러나 성필은 진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너만 평생 기억하고 사는 거라고”라는 진우의 독백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간극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복수인가, 신념인가
이 드라마가 기존 학교폭력 소재 작품들과 다른 부분은 바로 ‘선생님’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학생이 아닌 어른이 된 피해자가, 그것도 교육자라는 위치에서 가해자를 마주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다룬다. 진우는 과거 학교를 떠나며 “언젠간 교사가 돼서 너 같은 애가 없고 나 같은 애도 없는 그런 학교 만들 거야”라고 다짐했다. 그런 그에게 성필의 등장은 신념과 복수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한다.
매년 힘들게 재계약을 따내야 하는 기간제 교사라는 불안정한 신분은 이 갈등을 더욱 첨예하게 만든다. 동료 교사들은 “내년에 나는 정교사 티오 경쟁자나 마찬가지”라며 진우를 견제하고, 이사장 손녀의 담임을 맡은 성필은 승승장구한다. 4년차 기간제 교사와 신입 정규직 후보, 뒤바뀐 권력 관계 속에서 진우가 선택할 수 있는 복수는 제한적이다. “정교사 시켜드릴게요. 그게 최고의 복수일 거 같은데”라는 학생 희진의 제안은 진우에게 또 다른 유혹이 된다.
은서라는 거울
드라마는 송진우와 이은서라는 두 인물을 교차시키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며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은서는 과거 진우의 모습 그 자체다. “도와주세요 선생님”이라는 은서의 절규는 과거 진우가 외쳤을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진우는 은서를 도울 수 없다. 기간제 교사라는 불안정한 위치, 성필이라는 동료의 존재가 그를 무력하게 만든다.
은서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진우는 움직인다. 성필이 과거 진우를 괴롭힌 영상을 발견한 희진은 “받은 대로 갚아주자고요. 제가 도와드릴게요”라며 복수를 제안한다. 하지만 진우가 선택한 것은 복수가 아니라 신고였다. 학교폭력 신고, 교육청 보고, 이는 성필을 학교에서 몰아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진우 자신도 학교를 떠나야 하는 선택이기도 했다.
증인이 된 아이들
“증인만 있으면”이라는 말에 진우는 절망한다. “너만 떠나면 아무도 없지.” 과거 자신을 도와줄 증인이 없었던 것처럼, 은서에게도 증인은 없었다. 그러나 진우는 다른 선택을 한다. 학생들 앞에서 사과하고, 약속한다. “선생님이 돼서 누구보다 잘 알면서 너희에게 믿음을 못 줘서 미안하다고. 끝까지 최선을 다할테니까 한 번만 믿어주면 이제 정말 끝낼 수 있다고.”
이 장면은 이 드라마의 백미다. 진우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하나둘 진우에게 연락한다. “저장했어요. 돕겠다고.” 이은서, 송진우를 키킨 최유민, 김서현, 이하인, 최윤정, 윤미소, 구자인. 침묵하던 아이들이 증인이 되기로 선택한 순간, 진우의 복수는 완성된다.
어른이 되는 법
나수지 PD는 이 드라마를 통해 묻는다. “좋은 어른이 되려는 사람이 여러 상황과 유혹에 흔들릴 수 있고, 그 결정이 우리가 살아가는 것과 닮아있지 않나.” 진우는 성필에게 말한다. “지금에 네가 평생 남아. 시간이 지나서 어른이 돼도 그 아이가 평생 남아서 널 괴롭힌다고. 나랑 다른 어른이 되줘.”
복수는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설령 내가 떠나더라도 더 이상 누구도 떠나지 않을 수 있다고.” 진우의 이 약속은 과거 자신에게 했던 다짐을 지키는 방식이다. “너 같은 애가 없고 나 같은 애도 없는 그런 학교 만들 거야. 그러니까 기억해.”
김대건은 “굉장히 심오하고 무거울 법한 드라마처럼 보이지 않는데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문유강은 “사회적으로 보이는 모습과 다른 각자의 이면”을 담았다고 했다. 이연은 “구렁텅이에서 상처받지 않으려 버텨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앞서 ‘웬 아이가 보았네’와 ‘때빼고 광내고’를 통해 아픈 현실을 꿰뚫으며 따뜻한 위로를 전했던 나수지 PD는 이번에도 학교의 뼈 아픈 현실을 밀도 높게 담아내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 기간제 교사의 불안정한 신분, 동료 교사와의 경쟁, 학생 간의 괴롭힘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서 선택하고 연대하는 인물들을 통해 변화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