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초저예산으로 빚어낸 묵직한 미스터리
지난해 극장가에서 가장 독특한 흔적을 남긴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연상호 감독의 영화 ‘얼굴’이다. 작품은 연상호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감과 박정민, 권해효, 신현빈 등 화려한 주연진의 네임밸류에도 불구하고 단 2억 원이라는 초저예산으로 제작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개봉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상업 영화 시장에서 연 감독은 거대한 물량 공세 대신 인간의 추악한 본성과 뒤틀린 기억을 정밀하게 파고드는 서사로 승부수를 던졌다.
40년 만에 드러난 백골, 뒤틀린 기억의 조각을 맞추다
영화는 ‘살아 있는 기적’이라 칭송받는 시각장애인 전각 장인 임영규(권해효 분)와 그의 아들 임동환(박정민 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들의 평온한 일상은 다큐멘터리 촬영을 계기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결정적인 사건은 40년 전 실종된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 정영희(신현빈 분)의 유골이 야산에서 발견되면서 발생한다.
아들 동환에게 어머니는 이름조차 생소한 존재였다. 아버지 영규로부터 들은 정보라고는 갓난아기였던 자신과 눈먼 남편을 버리고 매정하게 집을 나갔다는 이야기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로부터 어머니가 타살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통보를 받은 순간 동환은 자신이 평생 믿어온 가족의 기억이 조작됐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
어머니의 죽음 뒤에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동환의 여정은 관객들에게 묵직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동환은 과거 공장 동료들과 주변 인물들을 수소문하며 정영희라는 한 여성이 걸어온 궤적을 밟아 나간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어머니의 모습은 아버지의 설명과는 전혀 달랐다.
당시 사람들은 영희를 ‘어리숙하고 못생긴 여자’라며 조롱하고 무시했다. 영화는 1970년대 회상 장면을 통해 그의 삶을 조명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의 얼굴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연출은 관객들의 궁금증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얼굴’이라는 제목이 가진 상징성을 강화한다.
사람들의 조롱 섞인 증언 속에서도 영희의 진실된 본모습은 서서히 빛을 발한다. 그는 누구보다 선하고 정의로운 사람이었으며 동료의 억울한 일을 바로잡기 위해 거대 권력자에게 홀로 맞섰던 인물이었다. 그 정의로움의 대가는 참혹한 폭력과 위협, 40년의 침묵이었다.
동환이 진실에 다가갈수록 마주하게 되는 것은 성자처럼 추앙받던 아버지 영규의 숨겨진 얼굴이다. 선천적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전각 명인이 된 영규는 청계천 노점에서 시작해 ‘기적’을 일궈낸 입지전적인 인물로 그려지지만 정영희의 죽음과 연관된 그의 과거는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안긴다.
여기에 비극적인 가족사를 자극적인 소재로만 소비하려는 다큐멘터리 PD의 시선이 더해지며 영화는 현대 사회의 관음증적인 태도까지 날카롭게 비판한다. 진실을 찾으려는 아들, 진실을 덮으려는 아버지, 진실을 팔아치우려는 외부자의 삼각 구도는 영화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제작비 2억 원의 기적, 연 감독이 던진 묵직한 화두
평론가와 관객들은 특히 주연 배우 박정민의 연기력에 압도적인 찬사를 보냈다. 박정민은 어머니에 대한 부재를 원망하며 살다 뒤늦게 마주한 진실 앞에 분노하고 절규하는 임동환의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해 냈다. 권해효 역시 인자한 장인의 모습 뒤에 숨겨진 서늘한 이면을 연기하며 극의 중심을 잡았다.
작품을 감상한 관람객들은 “이 영화에서는 타인을 괴물로 불렀던 자들이 진짜 괴물에 가까우며, 괴물로 불렸던 자는 가장 평범하고 선량한 인간상에 가까움”, “1인 2역 연기를 이렇게 찢어 놓고 박정민아 안식년은 무슨… 미친 듯이 연기하거라”, ”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사람에게 씌워진 가장 짙은 색안경”, ” 요즘 한국 영화 중에선 이 정도면 수작인 듯. 배우들의 열연만으로도 볼 맛이 난다. 다만 여자 PD 연기는 다소 아쉬움”, ” 저예산이지만 영화는 가히 고급스럽다.. 무언가 연기하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만큼 연기를 잘하는 게 또 있을까 싶음 박정민 권해효 미쳤고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곱씹게 되어 여운이 크게 남네요 예술성 작품성 대중성 다 갖춘 명작” 등과 같은 후기를 남겼다.
영화 ‘얼굴’은 결국 우리가 보고 있는 ‘얼굴’이 그 사람의 본질을 담고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2억 원이라는 제작비가 무색할 만큼 밀도 높은 서사와 상징적인 연출은 연 감독이 가진 스토리텔링의 힘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