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극장가 갈증 해소한 단비 같은 수작
2021년 개봉 당시 코로나19로 위축됐던 한국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영화 ‘세자매’는 개성 강한 세 인물을 통해 가족 시스템 내부의 균열과 대물림되는 상처를 날카롭게 파고든 수작이다. 영화는 완벽한 척, 괜찮은 척, 안 취한 척하며 각자의 삶을 버텨내던 세 자매가 아버지의 생일을 기점으로 한자리에 모이며 겪게 되는 감정의 폭발을 담아냈다.
문소리·김선영·장윤주, 세 배우가 만든 완벽한 앙상블
문소리가 연기한 둘째 미연은 극의 중심을 잡는 인물이다. 대학 교수 남편과 번듯한 가정을 꾸린 그는 남들이 보기에 남부러울 것 없는 성공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완벽한 겉모습을 한 꺼풀 벗겨내면 대외적인 이미지에 집착하며 분노와 공격성을 억누르고 있는 일그러진 내면이 드러난다.
특히 종교에 광적으로 집착하며 어린 딸을 학대 수준으로 몰아세우는 모습은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자신의 자녀에게 그대로 투영하는 비극적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견고해 보이던 그의 성은 남편의 외도와 동생의 등장으로 인해 겉잡을 수 없는 균열을 맞이한다.
김선영이 분한 첫째 희숙은 동생들과 배다른 자매라는 위치에서 늘 소외되고 위축된 삶을 산다. 별거 중인 남편과 반항적인 딸 사이에서 시종일관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그는 전형적인 ‘소심덩어리’다. 그런 희숙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광기 어린 웃음을 짓거나 자해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모습은 그가 감내해온 인내의 시간이 얼마나 파괴적이었는지를 시사하며 관객들에게 서늘한 충격을 안긴다.
막내 미옥 역을 맡은 장윤주는 슬럼프에 빠진 극작가로 분했다. 늘 술에 취해 언니들에게 주정을 부리는 그는 가족 내 골칫덩어리지만 동시에 가장 투명하게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혼남과 재혼하여 새엄마가 됐지만 친엄마를 그리워하는 아들과의 서툰 관계 속에서 방황하는 그의 모습은 현대 가족이 안고 있는 또 다른 형태의 결핍을 대변한다.
영화는 세 자매가 아버지의 생일 잔치를 위해 모인 자리에서 정점에 달한다. 부모에게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었던 자매들의 억눌린 감정은 남동생 진섭의 등장과 함께 폭발하며 아수라장이 된다. 일부 관객들 사이에서는 전개가 다소 과하고 답답하다는 ‘고구마’식 반응도 있었으나 이는 마지막 장면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빌드업으로 평가받는다. 켜켜이 쌓아온 감정의 부스러기들이 단번에 터져 나가는 후반부는 영화의 백미로 꼽힌다.
조연들의 활약 역시 눈부시다. 조한철, 현봉식 등 베테랑 배우들이 극의 활력을 더했으며 특히 독립영화 ‘박화영’으로 주목받았던 김가희는 짧은 등장에도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극의 밀도를 높였다.
팬데믹 가뭄 속 빛났던 2021년 최고의 수작
‘세자매’는 평론가와 관객 모두에게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력이 압권이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문소리와 김선영은 절륜한 연기력으로 캐릭터의 입체감을 살려냈고 모델 출신 장윤주는 이번 작품을 통해 주연 배우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
작품을 감상한 관람객들은 “아주 리얼리티한 영화였다. 세 분의 연기가 너무 좋았고 감동적이었다. 여성분들은 많이 공감하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바다 장면으로 마무리도 너무 좋았다”, “2021년, 4차 산업혁명을 논하는 문명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전근대성에 뿌리를 둔, 가부장제, 가정폭력, 성폭력 등, 폭력의 강도는 낮아지지 않고 있음을 한 가족의 트라우마를 통해 여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연출과 촬영 톤은 거칠었지만, 그 투박함이 오히려 우리네 삶의 속살을 만지게 해줘서 더욱 리얼하게 다가왔다. 세 배우의 연기는 엄지 척”, “트라우마는 어떤 형태로든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어린 시절에 입은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우리의 무의식에 남아서 비슷한 상황 비슷한 사람만 봐도 불쑥불쑥 드러나서 괴롭힌다. 기억 정리를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이유다 내 힘이 있는 만큼씩의 기억을 해내고 정리할 것”, “엔딩곡이 흐르는데 그제서야 갈무리하지 못한 눈물샘이 터지고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만 멍하게 보다 나왔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 뛰어놀 수 있는 작품이 더 많아지길” 등과 같은 후기를 남겼다.
팬데믹 여파로 양질의 한국 영화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2021년, ‘세자매’는 ‘자산어보’, ‘모가디슈’와 함께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지킨 ‘사막 속 오아시스’ 같은 작품이었다. 가족이라는 가장 가깝고도 먼 관계 속에서 우리가 외면해왔던 상처를 직면하게 만드는 영화는 드라마를 넘어 시대의 아픔을 위로하는 묵직한 메시지를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