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괴작인가 시대를 앞선 미학인가
1979년 개봉한 영화 ‘칼리굴라’는 고대 로마 제국의 제3대 황제 칼리굴라를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이다. 개봉 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화는 ‘희대의 괴작’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예술과 외설 사이의 끝없는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문제작으로 남아 있다.
권력을 향한 집착이 낳은 로마의 광기
영화의 배경은 서기 37년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피터 오툴 분)의 폭정이 극에 달했던 시절이다. 황제 티베리우스가 입양아인 칼리굴라(말콤 맥도웰 분)보다 친손자인 제멜루스를 더 아끼자 칼리굴라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지 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생존 본능에 사로잡힌다. 황제의 심복 네르바(존 길구드 분)는 칼리굴라가 황제가 되면 로마가 멸망할 것이라 예언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에 충격을 받은 칼리굴라는 주변의 모든 인물을 불신하기 시작한다.
결국 티베리우스 황제가 심장마비로 쓰러지자 칼리굴라는 수호대장 메크론과 함께 그를 살해하고 25세의 나이로 황제에 즉위한다. 초반에는 치세에 전념하는 듯 보였으나 권력의 독배를 마신 그는 서서히 광기를 드러낸다. 측근들을 사소한 트집으로 숙청하는 것은 물론 여동생 드루실라와 근친상간을 저지르고 왕비 케소냐(헬렌 미렌 분)가 낳은 딸을 아들이라고 우기는 등 기행을 일삼는다. 드루실라가 병으로 사망하자 그의 광기는 폭주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황실 내부에 거대한 매음굴을 설치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다.
초호화 캐스팅과 역대급 수위의 충돌
‘칼리굴라’는 제작 당시부터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말콤 맥도웰, 피터 오툴, 존 길구드 등 당대 최고의 명배우들이 합류한 초호화 캐스팅 덕분이었지만 완성된 영화의 수위는 일반적인 상업 영화를 넘어 포르노 영화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이로 인해 미국 첫 개봉 당시 등급 심사를 받지 못한 채 무등급으로 상영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내용 면에서는 로마판 황색 언론이라는 평을 받는 수에토니우스의 기록을 중심으로 세네카와 디오의 주장, 일부 창작 요소를 섞어 로마의 타락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노골적인 성적 묘사들은 영화를 ‘포르노’로 치부하게 만든 결정적 원인이 됐다.
영화가 기묘한 형태를 띠게 된 배경에는 제작 과정에서의 극심한 갈등이 있었다. 첫 감독인 틴토 브라스는 서사와 배우의 연기를 중시하는 예술적 에로티시즘을 추구했으나 더 자극적인 결과물을 원했던 제작자 밥 구치오네(펜트하우스 사장)와의 갈등 끝에 해고됐다.
뒤를 이은 프랑코 로셀리니 감독과 잔카를로 루이 감독 역시 영화를 포르노로 전락시키는 것에 반대하며 제작자와 대립하다 차례로 경질됐다. 결국 제작자 구치오네가 직접 메가폰을 잡고 펜트하우스 모델들을 동원해 하드코어한 장면들을 추가로 촬영해 삽입했다.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 예술적인 시퀀스와 제작자가 따로 찍은 외설적인 장면들이 뒤섞이며 작품의 정체성은 모호해졌다. 개봉 후 틴토 브라스 감독은 자신의 이름을 크레딧에서 빼 달라며 분노했고 배우들과의 갈등도 끊이지 않았다.
시대를 앞선 예술인가, 저급한 외설인가
그럼에도 ‘칼리굴라’를 저급한 영화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탄탄한 스토리라인과 캐릭터의 깊이 있는 내면 묘사, 로마 시대를 완벽히 재현한 소품은 영화적 완성도를 뒷받침한다. 특히 말콤 맥도웰의 광기 어린 연기는 관객을 압도하며 일부 평론가들은 노골적인 성적 묘사조차 로마의 타락과 황제의 광기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였다고 평가한다.
한국에서는 마광수 교수가 추천 영화 목록에 영화를 올렸으며 평론가 하재봉 역시 노골적인 노출 신과 네르바의 자살 장면을 극찬하며 영화의 예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한 바 있다. 비록 제작자의 욕심으로 인해 영화적 일관성은 무너졌으나 ‘칼리굴라’는 권력이 인간을 어떻게 괴물로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적나라하고 독보적인 기록으로 영화사에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