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역 없는 열연과 독보적 연출력, 25년이 지나도 회자되는 웰메이드 수작
2001년 개봉한 김성수 감독의 영화 ‘무사’는 한국 영화사에서 대규모 해외 로케이션과 본격적인 액션 연출의 신기원을 열었던 작품이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떠났던 고려의 무사들이 고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중국 대륙을 횡단하며 겪는 고난과 모험을 그린 영화는 당시 보기 드문 중국 올 로케이션 촬영을 감행하며 영화계의 큰 화제를 모았다.
격동의 1375년,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 한·중·일 대작
작품은 개봉 당시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명배우들이 대거 참여한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여기에 일본의 유명 작곡가 사기스 시로가 음악 감독으로 참여하면서 나름대로 한·중·일 3국의 역량이 결합한 아시아적 대작의 외형을 갖췄다.
‘무사’의 시대적 배경은 1375년(고려 우왕 1년)으로, 한반도에서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중국 대륙에서는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패권이 교체되던 격동의 시기이다. 당시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원나라 세력을 만리장성 이북으로 밀어냈으나 원의 부흥 세력인 북원은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한편, 고려는 공민왕 시해 사건과 명나라 사신 살해 사건으로 명과의 외교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처지였다.
영화는 관계 회복을 위해 명나라로 파견됐으나 간첩 혐의를 받고 귀양길에 오르게 된 고려 사신단의 이야기를 다룬다. 실제로 고려에서 보낸 사신들이 명나라에서 돌아오지 못했던 실제 역사 기록을 토대로 시나리오가 구성됐다. 여담으로 개봉 당시, 비슷한 시기 만화 잡지 ‘챔프’에서 연재되던 만화 ‘강호패도기’ 속 고려 무사 ‘이백’과 영화 속 호위무사 ‘여솔’의 캐릭터 설정(서자 출신의 뛰어난 무공, 여인을 구하기 위한 종횡무진 활약 등)이 유사성을 띠어 관객들 사이에서 소소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신단 일행은 부사 이지헌(송재호 분)과 그의 호위무사 여솔(정우성 분), 용호군의 젊은 장수 최정(주진모 분)과 부관 가남(박정학 분), 주진군 일행을 이끄는 대장 진립(안성기 분)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들은 서역으로의 귀양길 도중 몽고군(북원)의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게 되고 이때 명나라 호송 군대는 전멸한다. 결국 고려인들만이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고립되는 처지에 놓인다.
외교적 의무가 소멸한 상황에서, 주진군을 이끄는 최정 장군은 하루빨리 고려로 돌아가 명나라의 현 상황을 조정에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혹독한 강행군을 지시한다. 반면 이지헌 부사 측은 명군의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며 대립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 이어진 무리한 행군 속에서 결국 죽음을 예감한 이지헌 부사는 마지막 유언으로 자신의 노비였던 여솔을 면천해 자유인으로 풀어준다.
이후 사신단 일행이 도착한 객잔에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그곳에서 고려인들은 명나라의 부용공주(장쯔이 분)를 납치해 이동 중이던 몽고군 부대와 마주친다. 비록 명나라에 쫓기는 처지였으나 몽고군의 기세는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부용공주가 탄 마차가 고려인들 앞을 지나치는 순간 마차 밖으로 피로 쓴 ‘救(구원할 구)’ 자가 적힌 천 조각이 떨어진다.
이를 본 최정 장군은 고려 귀환 계획을 전면 수정한다. 명나라 공주를 구출함으로써 대국에 대한 명분을 세우고, 그 대가로 고려로 안전하게 돌아갈 배를 얻겠다는 계산이었다. 이에 부관 가남과 주진군 부대원들은 무모한 작전이라며 반발한다.
한편 일행보다 뒤늦게 이지헌 부사의 시신을 수습해 객잔에 들어선 여솔은 조용히 분노를 삭인다. 이때 서역의 색목인이 이지헌의 시신에 침을 뱉는 모욕을 가하자 여솔은 즉시 단칼에 그를 베어버린다. 이에 격분한 색목인들이 몽고군의 수장인 람불화(우영광 분)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여솔의 압도적인 창 솜씨에 매료된 람불화는 그를 죽이지 말고 생포하라는 명령을 내리며 극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한국 사극 액션의 정점,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흥행
영화 ‘무사’는 오늘날까지도 한국 사극 액션 영화 중 첫손에 꼽히는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광활한 중국 대륙을 무대로 펼쳐지는 인간들의 처절한 생존 사투를 사실적인 액션과 선 굵은 연출로 완성해냈기 때문이다. 영화가 보여준 묵직하고 완성도 높은 전투 시퀀스는 이후 제작된 국내 사극 영화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극 중 주인공 여솔이 고려 무사임에도 중국 스타일의 창술을 구사한다는 점이 세부적인 옥에 티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화려하고 난도 높은 창술 액션의 대부분을 배우 정우성이 대역 없이 직접 소화해냈다는 점은 평단의 큰 찬사를 받았다. 정우성뿐만 아니라 안성기, 주진모, 박정학 등 주연 배우 전원이 각자의 캐릭터에 부합하는 선 굵은 무술을 선보이며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잘 만들어진 웰메이드 수작으로서 ‘무사’는 개봉 당시 서울 관객 82만 명, 전국 관객 추정 250만 명을 동원하며 나름대로 준수한 성적을 거뒀지만 제작 규모와 투입된 자본에 비추어 볼 때 동시기 경쟁작들과 맞물린 개봉 일정 등 시기적 요인으로 메가 히트급 대박 흥행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