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이 극장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일본이 조선인들의 민족의식을 꺾으려 개최한 전조선자전차대회에서 실제 인물 엄복동이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조선인 최초로 우승을 거머쥐는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그의 활약은 곧 조선 전역에 열기를 불러일으키고 일본 측은 엄복동의 연승을 막고자 자전차 대회를 반복적으로 여는 등 극적인 대립 구도가 펼쳐진다.
‘자전차왕 엄복동’, 기대 걸린 100억 대작
당시 ‘자전차왕 엄복동’의 기획은 비교적 소박한 저예산 영화에서 시작됐지만 엔터테인먼트 사업 확장을 노린 대기업 자본이 대거 유입되면서, 제작비만 100억 원에 달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성격이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스포츠 영화가 아닌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배경과 독립투쟁의 애국 코드를 더해 상업적 성공을 노렸으나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시기 쏟아진 여러 ‘애국 영화’ 중 하나로 남게 됐다.

영화는 엄복동이라는 실존 인물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실제 스토리의 개연성이나 전개 방식에서 큰 아쉬움을 남겼다. 독립운동과 자전거 경주라는 두 축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하고 각각 따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감독이 촬영 도중 현장을 떠난 뒤 남은 제작진이 급하게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작품 전체의 완성도가 심각하게 흔들렸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게 흘러나왔다. 특히 시사회에서 상영된 버전이 최종 편집본이 아니라는 말까지 돌았고 2017년에 촬영을 마쳤음에도 CG 작업은 개봉을 불과 이틀 앞두고서야 겨우 완료될 정도로 제작 과정 내내 혼란이 이어졌다.

문제는 완성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야기의 전개는 익숙한 공식과 설정의 반복에 머물렀다. 인물 간 갈등이나 감정의 변화가 서사 속에서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특정 대사 하나에 따라 인물 감정이 급격하게 변하거나 앞뒤 행동이 연결되지 않는 장면들이 계속 등장한다. 조연 및 악역 인물들은 서사에서 단순 소모되는 느낌을 주고 주요 장면을 벗어나면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등 캐릭터 활용도도 낮았다.

자전거 경주라는 주요 소재 또한 극적 긴장감이나 박진감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다. 경기의 전개는 회상이나 외침, 몇 장면의 클로즈업만으로 승부가 갈리면서 스포츠 영화 특유의 역동적인 감각이나 현장감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작품임에도 화면은 반복적인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CG와 합성 역시 어색하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도입부부터 인물과 배경이 분리돼 보이는 장면이 반복되고 CG의 완성도 문제로 관객들은 실제 제작비의 사용처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장르의 요소를 동시에 담으려 했던 시도도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돌아갔다. 국수주의, 스포츠, 액션, 코미디, 멜로 등 서로 이질적인 장르가 한데 섞이면서 각 요소의 매력은 희석됐고 관객에게 인상 깊게 남는 포인트도 없었다. 개봉 전부터 과도한 애국 마케팅이 논란을 일으켰고 이미 애국심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에 피로감을 느끼던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극장을 외면했다.
17만 명 그친 관객, 기록적인 흥행 실패
흥행 결과도 참담했다. 150억 원이라는 국내 영화 기준으로도 적지 않은 제작비가 투입됐지만 최종 누적 관객수는 17만 명에 그치며 사실상 흥행 참패를 기록했다. 국내 배급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한국 영화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투자 대비 성적이 바닥권에 해당하는 기록적인 실패로 남았다.

일각에서는 제작비가 말 그대로 공중분해됐다는 평과 함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과 나란히 한국 영화계 최악의 흥행 실패작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자전차왕 엄복동’의 사례는 대규모 자본과 유명 배우 캐스팅만으로 흥행이 보장되지 않으며 관객의 기대를 뛰어넘는 완성도와 이야기의 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