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천국의 문’은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에서 처참한 실패를 기록하며 영화 산업에 큰 충격을 남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막대한 제작비를 들였지만 흥행 수익은 극히 낮았고 그 여파로 제작사가 파산하기까지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영화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작품이라는 재평가와 함께 영화계에서는 종종 ‘저주받은 대작’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존슨 카운티 전쟁, 미국 서부에서 벌어진 유혈 충돌
‘천국의 문’은 이탈리아계 감독 마이클 치미노가 연출한 서부극이다. 작품은 1892년 미국 와이오밍 주에서 벌어진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됐으며 미국 역사에서 존슨 카운티 전쟁으로 불리는 충돌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이름만 보면 지역 분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전에 가까운 무력 충돌이자 대규모 학살 사건으로 평가된다.

존슨 카운티 전쟁의 배경은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토지 문제에서 시작된다. 미국 원주민들을 대거 몰아내며 광대한 땅을 차지했던 거대 농장주들은 이후 뒤늦게 서부로 들어온 소규모 농장주들과 이주민들을 적대시했다. 이들은 황무지를 개간하며 삶의 터전을 마련한 소규모 농장주들을 강제로 몰아내고 그들이 일군 땅과 재산을 빼앗으려 했다. 이에 맞서 소규모 농장주들이 무장을 하면서 충돌이 격화됐고 거대 농장주들은 대규모 용병을 고용해 무력 대응에 나섰다.
사태는 결국 지역 분쟁을 넘어 전쟁 수준으로 확대됐다.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자 연방 정부의 미 육군 기병대까지 투입됐고 군대는 소작농과 소규모 농장주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선주민 학살과 다르지 않은 폭력을 행사했다. 해당 사건은 미국 사회 내부의 계급 갈등과 권력의 폭력성을 드러낸 사례로 기록된다.

당시 사건을 둘러싼 진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거대 농장주들은 정치권과 언론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뇌물과 압력을 통해 여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었다. 언론이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정치권에서도 논쟁이 이어졌다. 결국 사건은 미국 역사에서 불편한 과거로 남은 채 오랫동안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덮어버렸다.

이런 이유로 할리우드 역시 존슨 카운티 전쟁을 깊게 다루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관련 서적과 작품이 이미 100여 년 전부터 존재했지만 대부분 사건의 핵심을 깊게 파고들지 않는 방식이었다. 대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서부극 ‘셰인’ 역시 원작 소설이 존슨 카운티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영화에서는 그 갈등의 전모를 강조하지 않았다.
‘천국의 문’은 존슨 카운티 전쟁을 역사적 사실에 가깝게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영화는 프런티어 정신을 품고 서부로 향한 하버드 대학교 졸업생의 삶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던 주인공이 결국 존슨 카운티 전쟁 속에서 비극적 운명을 맞는 과정을 그린다.
‘천국의 문’,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큰 흥행 참패
영화가 미국에서 처음 공개됐을 때 반응은 매우 냉담했다. 일부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작품이 미국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반미 영화라고 주장하며 감독의 정치적 성향까지 문제 삼았다. 반면 소수의 평론가와 관객들은 미국 사회가 외면해 온 어두운 과거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비교적 좋은 반응이 이어졌다. 프랑스에서는 대성공은 아니었지만 일정 수준의 흥행을 기록했으며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도 올랐다.

문제는 영화의 제작 과정과 흥행 결과였다. ‘디어 헌터’로 아카데미상을 휩쓸며 명성을 얻은 마이클 치미노 감독은 차기작으로 해당 작품을 선택했다. 처음 계획된 제작비는 1100만 달러(한화 약 161억 원)였지만 감독은 1890년대 시대상을 재현하기 위해 대규모 제작을 진행했다. 하버드 졸업식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실제 하버드 교내의 나무를 옮겨오는 등 과감한 시도를 이어갔고 제작비는 빠르게 증가했다.
촬영 기간이 길어지면서 제작비는 계속 상승했고 최종적으로 약 4400만 달러(645억 원)에 달했다. 이는 당시 기준으로 매우 거대한 규모였다. 예를 들어 1982년 개봉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제작비가 약 3500만 달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천국의 문’이 얼마나 큰 비용이 투입된 작품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결과는 참담했다. 긴 러닝타임, 연기력 논란, 촬영 과정에서 떠돌던 여러 소문, 중심을 잡기 어려운 이야기 전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결국 미국 내 흥행 수익은 약 350만 달러에 그쳤다. 이는 제작비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었다.
흥행 실패의 여파는 영화 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천국의 문’의 손실은 제작사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에 큰 타격을 줬고 결국 회사는 1981년 부도를 맞았다. 이후 MGM에 인수되며 MGM/UA라는 이름으로 운영됐지만 MGM 역시 이후 경영 위기를 겪으며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처럼 막대한 손실을 남긴 영화였기 때문에 ‘천국의 문’은 지금까지도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큰 흥행 실패작 가운데 하나로 자주 언급된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영화에 대한 평가도 조금씩 달라졌다. 개봉 후 40년이 지난 현재에는 시대를 잘못 만난 작품이라는 의견도 많다. 미국 사회가 외면하려 했던 역사적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과도한 비판을 받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영화 전문 매체 씨네21은 작품을 두고 ‘저주받은 대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