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증 오류’에 분노한 시청자들…VOD·OTT 전면 폐기 및 영구 퇴출 제도화 촉구

21세기 입헌군주제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신분 타파 로맨스를 그리며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던 MBC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이 거센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이며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드라마 방영 중단과 VOD·OTT 콘텐츠 전면 폐기를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게시된 지 불과 5일 만에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소관 상임위원회로 회부됐다. 동시간대 시청률 1위와 글로벌 OTT 흥행을 기록하던 웰메이드 드라마가 한순간에 국가적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이다.
국회 청원 5일 만에 5만 명 돌파…소관위 회부 요건 충족
26일 국회 전자청원 시스템에 따르면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의 방영 중단과 콘텐츠 폐기를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이날 오전 동의자 5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22일 청원이 처음 게시된 이후 단 5일 만에 달성된 기록이다.

국회 규정상 청원 공개일로부터 30일 이내에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국민동의청원으로 공식 접수돼 소관 상임위원회에 넘겨진다. 이에 따라 해당 청원은 향후 청원심사소위원회 심사를 거쳐 본회의 부의 여부가 가려진다. 최종 채택된 청원 중 국회나 정부의 처리가 필요하다고 인정된 사안에 한해서는 법적·제도적 조치가 내려질 방침이다.
청원인은 청원 취지를 통해 “’21세기 대군부인’은 가상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설정했음에도 중국식 복식과 예법, 어휘를 무분별하게 차용해 명백한 문화 공정 및 역사 왜곡을 자행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지상파 방영 중단은 물론 이미 유통 중인 VOD와 OTT 콘텐츠 전면 폐기를 요구했다. 아울러 향후 유사한 역사 왜곡 논란을 야기하는 콘텐츠의 영구 퇴출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국회에 촉구했다.
논란의 시발점, ‘이안대군 즉위식’…제후국 표현 남발에 비난 여론 폭발
이번 사태의 결정적 도화선이 된 것은 지난 15일 방송된 드라마 11화의 ‘이안대군 즉위식’ 장면이었다. 해당 장면은 극 중 대한제국 혹은 가상 대한민국 황실의 위엄을 보여주는 중요 장면이었으나 고증 오류를 넘어선 중국 중심의 사대주의적 묘사로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극 중 왕은 자주국 황제의 상징인 ‘십이면류관'(12줄의 조형물이 달린 면류관) 대신 제후국에서나 착용하던 ‘구류면류관'(9줄의 조형물이 달린 면류관)을 착용하고 등장했다. 뿐만 아니라 왕의 즉위를 축하하는 신하들 역시 자주국의 표현인 ‘만세(萬歲)’ 대신 제후국이 상전국을 향해 외치던 ‘천세(千歲)’를 연호했다.

방송 직후 시청자 게시판과 SNS 등지에서는 “드라마가 스스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중국의 제후국으로 격하시켰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문화 공정에 빌미를 제공하는 이적 행위나 다름없다”는 격렬한 비판이 쏟아졌다.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주연 배우인 이지은과 변우석을 비롯해 연출을 맡은 박준화 감독, 극본을 쓴 유지원 작가 등 주요 출연진과 제작진이 잇달아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방송사인 MBC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즉각 11화 엔딩 장면을 삭제하는 등 진화에 나섰으나 이미 돌아선 여론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청자들은 장면 수정을 넘어 프로그램 자체를 말소해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신분 타파 로맨스’로 화제 모았던 대작
역사 왜곡 논란으로 얼룩지기 전 ’21세기 대군부인’은 독창적인 세계관과 입체적인 캐릭터 서사로 상반기 최고 화제작으로 손꼽히던 작품이다. 지난 4월 첫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는 ’21세기 입헌군주제 대한민국’이라는 가상 설정을 기반으로 전개된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신분은 고작 ‘평민’이라 짜증스러운 여자와 왕의 아들이지만 아무것도 가질 수 없어 슬픈 남자의 운명 개척 신분 타파 로맨스를 표방했다.

배우 이지은이 연기한 여주인공 ‘성희주’는 이기기 전까진 결코 싸움을 끝내지 않는 지독한 근성의 소유자다. 자수성가한 캐슬뷰티의 대표이자 최우수기업가상을 받은 인물이지만 신분제 사회 속에서 오직 가문과 혈통만으로 거드름을 피우는 명문가 자제들을 꼴 보기 싫어하는 인물이다. 평민이자 사생아라는 신분적 치부 때문에 결혼 시장에서 한계를 느낀 희주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고귀한 신랑감이자 왕실의 중심인 이안대군을 목표로 삼고 자신만의 전쟁을 시작한다. 그 길에서 자신과 닮았으나 전혀 다른 선택을 하는 남자 ‘이완’을 만나게 된다.
배우 변우석이 분한 남주인공 ‘이안대군 이완’은 희종대왕의 차남이자 선종의 유일한 아우로 왕실의 엄격한 규율과 경계 속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넘치는 승부욕과 불같은 성미를 지녔으나 차남이라는 탓에 ‘빛나서도 안 되고 소리 내서도 안 되는’ 족쇄를 찬 채 살아왔다. 자신을 경계하는 아버지를 위해 군호를 ‘이영’에서 ‘이신’, 다시 ‘이안’으로 바꾸며 불꽃을 숨긴 바다처럼 살아왔으나 형인 선종이 의문의 사고로 승하하면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고작 다섯 살인 어린 조카 세자 윤을 대신해 섭정을 시작하며 ’21세기 수양대군’이라는 피할 수 없는 타이틀을 얻게 된 비운의 황족이다.
시청률 1위·글로벌 흥행 기록에도…’문화 주권’ 앞엔 무용지물
드라마는 두 남녀의 대립과 로맨스, 황실 내부의 권력 암투를 밀도 있게 그려내며 방영 시작과 동시에 흥행 가도를 달렸다. 막강한 경쟁작이었던 SBS 금토 드라마 ‘신이랑 법률사무소’를 단숨에 제치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공고히 유지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OTT 플랫폼인 디즈니+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이후에는 당시 기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한국 시리즈(K-콘텐츠)로 기록되는 등 압도적인 글로벌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이런 눈부신 흥행 기록도 ‘역사 왜곡’과 ‘문화 주권 침해’라는 국민적 역린 앞에서는 아무런 방어막이 되지 못했다. K-콘텐츠가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시대인 만큼 잘못된 역사관과 문화적 고증 오류가 해외 시청자들에게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청원 동의 폭발로 번졌다.
동시간대 1위 왕좌에서 단 5일 만에 ‘방영 중단 및 영구 퇴출’이라는 파국 위기에 몰린 MBC ’21세기 대군부인’이 향후 국회 상임위 심사와 심각한 여론의 다그침 속에서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지, 방송계 안팎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