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다시 한번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지난 2일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자사 독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21세기 최고의 영화’ 설문 결과를 공개했다. 총 20만 명이 투표한 결과 ‘기생충’이 1위에 선정됐다. NYT는 지난달 영화계 인사 500명을 대상으로 같은 주제의 설문을 실시했는데 이때도 ‘기생충’이 1위에 오른바 있다.
설문에서 주목할 점은 한국 감독의 강세다. ‘기생충’뿐 아니라 봉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49위에 포함됐다. 박찬욱 감독도 두 편의 영화를 순위에 올렸다. ‘올드보이’가 40위, ‘아가씨’가 67위를 기록하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드높였다. 봉 감독은 50위 안에 두 편의 영화를 동시에 올리며 NYT 독자들의 인정을 받았다. 박 감독 역시 두 편의 영화로 미국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극적 서사와 깊은 사회적 메시지 ‘기생충’
2019년 개봉한 영화 ‘기생충’은 봉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송강호·이선균·조여정·최우식·박소담·장혜진 등이 출연했다. 이야기의 배경은 대한민국 서울. 반지하에 사는 ‘기택’ 가족이 부유층 ‘박 사장’ 가족의 집에 하나씩 취업하면서 시작된다.

처음엔 아들 기우가 고액 과외 선생으로 들어가게 되고 이후 가족들을 차례대로 박 사장의 집에 취업시킨다. 동생 기정은 미술 치료사로 위장해 취업한다. 뒤를 이어 아버지 기택이 운전기사, 어머니 충숙이 가정부로 들어가게 된다.
장르적으로는 사회 풍자극에 스릴러, 블랙코미디 요소가 결합돼 있다. 중반 이후 예상치 못한 반전이 발생하면서 긴장감이 급격히 올라간다. 지하 공간의 존재가 밝혀지는 시점부터는 공포와 폭력의 이미지까지 등장한다.
‘기생충’의 핵심 주제는 빈부격차와 계층 간 단절이다. 영화는 ‘위’와 ‘아래’, ‘지상’과 ‘지하’의 구조를 통해 계급의 위치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부잣집은 언덕 위에 있고 반지하 가난한 집은 항상 아래에 있다.
특히 영화 후반 폭우가 쏟아지는 장면은 이런 계급 구도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부유층 박 사장 가족은 캠핑을 취소한 정도의 불편을 겪지만 기택 가족은 집이 물에 잠겨 대피소로 쫓겨난다. ‘냄새’라는 코드도 주제를 부각시킨다. 박 사장이 말하는 ‘지하 사람 냄새’는 보이지 않는 경계이자 멸시를 상징한다. 가난한 사람의 존재는 보이되 가까이 오면 불쾌하다는 인식을 드러내며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차별적 감정을 대놓고 드러낸다.
이처럼 ‘기생충’은 계급 격차를 건조하게 묘사하면서도 폭발적인 서사 전개를 통해 극적 긴장을 놓치지 않는다. 영화의 결말은 개방적이다. 아들 기우는 부자가 돼 지하실에 갇힌 아버지를 구하겠다는 계획을 세우지만 그것이 현실이 아닌 상상임을 암시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기생충’은 마지막 장면에서 희망을 비추는 듯하지만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현실을 말없이 보여준다. 계층 상승의 꿈은 그저 꿈으로 남기면서 영화는 제목처럼 누가 ‘기생충’인지를 되묻게 만든다. 부유층에 얹혀사는 가난한 사람일까,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며 존재를 유지하는 부자일까.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니라 구조적 현실에 갇힌 인간 군상을 입체적으로 묘사했다.
한국 영화 최초 기록…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기생충’은 개봉 당시 2019년 제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한국 영화 최초이자 아시아 영화 중에서도 드문 성과다. 이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로도 기록됐다. 이전까지는 영어 영화 중심의 수상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기생충’의 수상은 미국 영화계의 패러다임 변화로 평가됐다.
또한 골든글로브, 영국 아카데미(BAFTA), 전미비평가협회 등 전 세계 주요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휩쓸었다. 2020년 한 해 동안 영화 관련 기사와 토론, 평론의 중심이기도 했다. 이는 한국 영화 전체의 위상을 새롭게 만든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뉴욕타임스 외에도 ‘타임’, ‘가디언’, ‘롤링스톤’ 등 유력 매체들이 최고작 리스트에 ‘기생충’을 올렸다.
관객 반응 역시 뜨거웠다. 한국에선 1000만 명 이상이 극장을 찾았다. 미국에서도 개봉 당시 자막 영화로는 드물게 수천만 달러 흥행을 기록했다. 프랑스, 일본, 독일 등 유럽과 아시아권에서도 입소문을 타고 상영관이 확대됐다.
한편, 뉴욕타임스 독자 설문 상위권에는 세계 각국의 영화가 포진했다. 2위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멀홀랜드 드라이브’였다. 3위는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어 ‘데어 윌 비 블러드’, ‘인터스텔라’, ‘다크나이트’,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터널 선샤인’, ‘소셜네트워크’가 10위권에 포함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