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16.5%가 증명한 저력, 국극 열풍 재점화

1950년대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피어난 가장 화려한 꽃 ‘여성국극’이 2024년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궜다. tvN 토일 드라마 ‘정년이’는 역사 속으로 잊혀졌던 여성국극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바탕으로 소리 천재 ‘정년’의 성장기와 그 시대를 살아낸 여성 예술가들의 열망을 밀도 있게 그려내며 종영 후에도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여성국극의 짧고도 찬란했던 전성기
드라마 ‘정년이’의 가장 큰 성취는 대중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여성국극’을 완벽하게 재소환했다는 점이다. 1948년 여성국악동호회의 결성으로 시작된 여성국극은 오직 여성들로만 구성된 파격적인 형태의 공연예술이었다.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 속에서도 수그러들지 않았던 그 인기는 전쟁 직후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영화와 텔레비전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과 함께 여성국극은 너무나 이른 작별을 고해야 했다. 드라마는 바로 짧고도 강렬했던 전성기에 주목한다. 존재조차 희미해졌던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들춰 그 시절 배우들이 겪었을 환호와 좌절, 웃음과 눈물을 생생하게 복원해냈다. 이는 과거를 추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예술사의 소중한 자산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조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태리·신예은의 압도적 시너지, 두 ‘천재’가 보여준 성장의 정석
작품의 중심축은 타고난 천재성을 지닌 두 인물 정년(김태리 분)과 영서(신예은 분)의 서사다. 김태리가 연기한 ‘정년’은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풍부한 성량과 섬세한 감정 표현을 타고난 ‘소리 천재’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정년이 맨몸으로 국극단에 뛰어들어 성장해 가는 과정은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반면 신예은이 맡은 ‘허영서’는 명망 있는 소프라노 어머니 아래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성골 중의 성골’이다. 도도하고 오만해 보이지만 뒤편에서는 정년의 재능에 끊임없이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자라온 환경부터 기질까지 정반대인 두 사람은 사사건건 부딪히며 갈등하지만 결국 서로가 있기에 자신이 존재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두 천재의 갈등과 연대는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됐다.
드라마의 배경인 1950년대 후반 서울은 전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암울한 시기였지만 역설적이게도 여성국극이 가장 화려하게 꽃핀 시기 또한 이때였다. ‘정년이’는 어둡고 절망적인 시절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꿈은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김태리, 신예은을 비롯해 라미란, 정은채 등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의 열연은 극의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특히 국극 장면의 높은 재현도와 미술적 완성도는 시각적인 즐거움을 넘어 예술적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후반부 전개에 대한 일부 아쉬운 목소리도 있었으나 서사와 캐릭터 면에서 정통 성장물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며 시청자들이 ‘극중극’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도록 유도한 연출은 신의 한 수였다.

흥행 기록 또한 눈부시다. 방영 3회 만에 전작의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웠고 4회에는 2024년 화제작 ‘눈물의 여왕’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최종회 시청률은 16.5%를 기록하며 tvN 역대 드라마 시청률 9위에 이름을 올리는 등 대중성을 완벽히 확보했다.

드라마를 통해 여성국극에 매료된 시청자들이 늘어나면서 실제 여성국극 공연 표가 전석 매진되고 연장 공연이 확정되는 등 소외됐던 전통 예술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정년이’는 드라마 한 편을 넘어 잊혀졌던 우리의 찬란한 유산을 현재의 시간으로 다시 불러온 진정한 의미의 ‘성장기’로 기억된다.



